Education
2009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School of Arts - Fine Arts diploma graduation
2008
French Beaux-Arts in Dijon National Art School exchange student
2005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School of Arts - graduation of Art and Design, and Art History
2009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
2008
프랑스 보자르디종 국립미술학교 교환학생
2005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졸업
남북전쟁이 끝난 지 불과 60년 한국은 고도성장을 이루어 낸다. 경제성장과 함께 대부분의 한국가정이 그렇듯이 나의 부모님도 맞벌이를 하셨고, 형제가 없던 나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혼자 보냈다. 혼자 지내는 시간동안 난 만화를 자주 보곤 했는데 만화의 이미지가 내게 미적으로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비워져있는 혼자만의 공간을 다른 이의 경험으로 채워주는 대리만족의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의 강국, 수많은 게임의 원산지, 모바일, IT의 발전국 등으로 설명되어지는 한국은 혼자되어지는 것에 준비되어진 새로운 이기들의 집합소이다. 개인적으로 변화하는 삶을 사는 것은 육체적으로 매우 편리하고 간편하다. 하지만 새로운 이기들에 몸이 적응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성까지 편리하게 만들어 줄지는 의문이다.근대적인 의미에서 소녀는 단순히 어린여자아이가 아닌 신선한 주체이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닦아놓은 안락한 현대문명에 소비적 주체로서 성장한 경제속의 우수한 고객이다. 그들은 다양한 상품의 소비와 아울러 영화나 드라마, 인터넷, 잡지 등에서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캐릭터를 소비한다. 캐릭터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관계 짓는 그들의 삶은 항상 타인에게 노출되어있는 현대인들의 병리적인 삶을 잘 보여준다. 소녀들은 성장하고 있는 시기의 예민한 감성을 가진 주체로써 현대사회에 가장 처절하게 적응 하고 있는 인물이다.현대의 초상은 무엇인가? 나는 박물관의 램브란트의 자화상을 대했을 때 느꼈던 그의 진실성을 현대 캐릭터에서 느낄 수 없다. 특히 소녀들의 캐릭터는 미디어 속에 매우 키치적이고 섹슈얼하게 표현되고 있다. 인터뷰도 채팅으로 대신하는 지금 이 시점,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제2의 공간에 대해 그리고 그 안의 우리의 모습을 대신하여 살고 있는 캐릭터의 초상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미술관에서 보던 초상화와 매우 다른 형식인 아바타의 모습으로 더욱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삶의 한부분에서 게임으로, 교육으로, 친목상의 이유로 우리들을 대변하여 살고 있다면, 그리고 점점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초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현재 램브란트의 얼굴도 아닌, 그렇다고 캐릭터의 얼굴도 아닌 얼굴로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낭만의 과거를 살았었던 우리는 보다 편리하지만 대체된 경험으로 가득한 미래로 가고 있다. 만남을 대신하는 채팅창, 여행을 하지 않고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구글얼스까지 현대의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은 다른 범주 안에서 넓어지고 우리의 몸은 나태해 진다. 이것은 분명 몸과 정신이 다르게 운동하는 것이다. 몸의 움직임과 정신의 움직임이 분리되는 이 시점. 여행지에서 느끼는 바람의 향기와 대화를 할 때 미묘하게 느껴지는 상대방의 성품과 핸드폰이 가져다준 편리함속에 없어진 기다림의 낭만을 우리의 정신은 그리워하지 않을까? 변화하는 생활에서 우리의 정신은 예전과 같은 조건에서 반응하지 않는다.
잘 그려진 초상화속의 표정은 우주에서 보낸 신호 같은 미묘한 떨림을 표현해 낸다. 사람의 마음, 느낌, 생각은 얼굴로 표현되고, 그것은 주어진 상황, 만나는 사람, 등의 조건에 무수히도 다른 표정으로 변화한다. 그러한 얼굴이 점점 단순화 되는 현실과 단순화 돼져야 하는 조건을 바라보며 많은 질문을 갖게 된다. 현대미술보다 고전의 오일 페인팅에서 더 깊은 감동을 받는 나에게 그림은 아직도 소박한 작용, 화가가 만들어낸 에너지와 그것을 보는 관객과의 감동스런 교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은 아카데믹한 소묘방식의 나이브한 방식이지만 결코 나이브하지 않는 현대의 초상에 대한 연구이다